말레이시아 기본 정보(네이버 퍼온글)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언어 말레이어,영어,중국어 면적 329,847㎢ / 세계 67위 CIA The World Factbook 인구 약 30,073,353명 / 세계 43위 CIA The World Factbook 2014.07. 화폐 링깃 (MYR) GDP 3,279억$ / 세계 33위 IMF 2015
1. 말레이시아의 중세 및 근대 역사말레이시아의 최초 국가로 알려져 있는 믈라카(Malacca) 왕국은 1403년에 세워졌다. 그리고 믈라카 왕국은 1414년에 이슬람교를 국교로 선포하였다. 1511년 포르투갈이 믈라카 왕국을, 1641년에는 네덜란드가 믈라카 왕국을 각각 점령하였다.
1824년 영국이 믈라카의 지배권을 갖게 되었다. 1874년에는 영국의 보호령이 시작되어 말레이 반도 전체가 본격적으로 영국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1년에는 일본이 말레이시아를 잠시 점령하였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전한 후인 1946년 4월, 말레이시아는 다시 영국의 점령을 받게 되었다. 당시 영국은 ‘말라야 연합(Malayan Union)’을 만들어 군정을 실시하였다. 1946년에 ‘연합말레이국민조직(UMNO)1)’이 창설되었다. 1948년 2월에는 영국과의 협정에 따라 말레이시아에 말라야 연방이 세워졌으나 군사와 외교, 재정 등 3권은 계속해서 영국이 장악한다는 조건이 따랐다.
2. 말레이시아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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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의 탄생 말레이시아의 초대 총리가 된 압둘 라만(Tunku Abdul Rahman, 1903 ~1990)은 1955년 7월에 집권을 하여 1970년 9월까지 총리직을 수행하였다. 총리 취임 1년 후인 1957년 8월 31일 말라야 연방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1963년 9월 16일, 싱가포르 자치령과 영국령이던 보르네오까지 합쳐 오늘날의 말레이시아가 세워졌다. 1965년 8월에는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로부터 분리되어 독립하였다. 1969년 5월 말레이인(人)과 중국인 사이에 인종폭동이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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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말레이시아의 인종폭동 사건 1969년 5월 13일,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에서 중국계와 말레이계 민족 간에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말레이시아는 독립 이후 주로 기업을 경영하는 중국계 부유층과 주로 시골에서 사는 말레이계 빈곤층 사이에 극명한 빈부격차가 노정되었다. 그러던 중 1969년 5월 10일 치러진 총선에서 연합말레이국민조직(UMNO)을 주도하던 여권이 부진한 성적을 거둔 반면에 중국계 야당은 크게 약진하였다. 그런데 이들 중국계 정당들의 축하 퍼레이드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축하 퍼레이드 행렬이 원래의 노선에서 이탈해 캄퐁 바루라는 말레이 구역을 통과하면서 말레이계 주민을 조롱했는데, 이것이 인종폭동의 발단이 되었다. 이로 인해 말레이계 주민에 대한 항의 행진이 연합말레이국민조직(UMNO)의 주도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행진에 참가하려던 말레이계 주민들이 중국계 주민들에게 습격을 당하였다는 소문이 유포되었다. 그러자 이에 분노한 말레이계 군중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길을 지나던 중국인 2명을 살해하면서 폭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폭동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쿠알라룸푸르 시내와 수도권 인근 지역 일부에서는 방화가 자행되었고, 이 때문에 전국적인 비상사태가 선포되었으며, 야간 통행금지가 실시되었다. 양측 간 인종폭동의 결과 사망 184명, 부상 356명, 방화 753건, 차량 파손 211대의 피해가 발생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즉각 말레이인들을 진정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단행하였다. 당시 조치로는 신경제정책, 말레이인들에 대한 일종의 우대 정책인 부미푸트라정책(Bumiputra policy), 말레이어 상위 정책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국가적 단결 강화라는 명분 아래 공식적인 교육 언어를 영어에서 말레이어로 교체하였다.
이하 생략. [네이버 지식백과] 말레이시아의 역사 (말레이시아 개황, 2010. 12., 외교부)